산골에서 여성 홀몸으로 목회…주민들에게 핍박 당하며 10년 세월 이겨낸 참 목자

그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도 아마 이맘 때쯤이었다. 가지가 꺾일 듯 은행알맹이들이 매달린 노란 은행나무, 당장 뛰어 올라 가지를 흔들면 주렁주렁 달린 감들이 후두둑 떨어질 것 같은 감나무, 대추와 사과까지 과실들이 풍성했다. 그런 풍경을 가로질러 충북 청원군 대청호를 굽이돌아 산자락을 끼고 한참을 들어갔던 것 같다. 영화 속에나 봄직한 산골 마을이 펼쳐졌고, 거기 홀로 떨어진 세상의 섬 같은 땅이 있었다.
봉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쪽 저쪽 마을이 있고, 전부 합해야 60호 가옥에 100명 남짓한 주민들이 살고 있고, 또 거기 하나뿐인 교회가 있다. 그이는 거기서 여성의 몸으로 힘겨운 목회를 하고 있었다. 무당의 굿에 의지하며 살아 온 사람들에게 그녀와 교회는 이방인이었다. 종소리가 들려도 교회를 향해 욕설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남자 목회자들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세 자리를 떠났고, 6개월 있으면 대단하다 불렀다.
거기 홀 몸으로 부임하여 그녀는 사역을 시작하였다. 답답한 마음에 목놓아 기도라도 하면 사내들의 거센 항의가 들어왔고 언젠가 술에 취한 사내로부터 손찌검까지 당해 입원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마을을 떠나지 못하였다. 불쌍한 사람들 때문이었다. 하루에 세 번 버스가 들어오는 이 외딴 산골에서 그녀는 낡은 승용차를 운전하며 마을 사람들의 발이 되었다. 때로는 앰뷸런스가 되기도 하고 때론 택시가 되었다. 주민들은 일이 생기면 교회로 전화하였고, 그녀는 늘 출동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농번기에 사람들이 바쁘면 그녀는 대신 소여물을 주었고, 집배원이 되어 편지를 전해주었다. 어버이날이면 경로잔치를 열었고 지붕을 개량하는 일을 먼저 하였고, 수도시설도 먼저 갖추었다. 주민들은 그녀를 따라서 지붕을 개량하고 수도를 놓았다. 6개월이면 떠날 줄 알았는데 10년을 넘게 함께 살아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주민들은 이제 남 대하듯 하지 않는다. 곧잘 식사에도 초대하였다. 그렇게 살아오는 세월 동안 마을은 조금씩 바뀌었다. 언젠가부터 요란하던 굿 풍경이 많이 사라졌고, 비록 교회에 안 나오더라도 그녀를 만나면 “교회 못 가서 미안혀” 하는 말을 꺼내었다.
7년 전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의 월 수입은 25만 원이었다. 후원금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심하게 앓아 몇 주간을 병원에 머물렀다고 했다. 홀로 그 외로움을 견디면서도 그녀는 말했다.
“혼자 사는데 사례비 많이 받아서 뭘 해요. 게다가 교회도 크게 키우지 못한 건 모두 내 책임인데 무슨 낯으로…, 이것도 고맙지요. 하나님께서 채우시겠지요? 단지 그분께 인정받으면 비참한 인생은 아니지요. 홀몸이라 해서 내 장래 걱정할 이유는 없어요. 불안하다, 생각하시면 데려가시겠죠 뭐.”
점퍼 차림으로 내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던 그녀, 지금도 건강하게 거기서 목회하고 계실까? 벌써 7년이 흘렀는데…. 겨울이 오기 전에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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