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이라는 책에서 옮긴 글입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도심은 오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리 화려하지도, 남루하지도 않은 옷차림의 아버지와 아들이 사람들 속에서 거닐고 있다. 열 두서너 살쯤 돼 보이는 아들의 손에는 작은 선물 꾸러미가 들려 있다. 동시에 한 노파의 구걸소리가 들린다. 대개는 이 노파에게 눈길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냥 지나쳐 버린다. 동전 몇 닢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아들의 손목을 잡고 가던 아버지는 낡은 지갑 속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낸 뒤 아들에게 쥐어 주면서 말한다.
“얘야 이 돈을 할아버지에게 드리면서 말해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정성을 드린다고.”
아들은 구걸하는 노파에게 걸어가서 아버지의 당부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정성을 드려요”라고 말하며 지폐 한 장을 건넸다. 이 아들은 그 후 성인이 됐을 때 이날을 회고하면서 말했다.
“목사였던 아버지는 평소 무척 검소하셨고 그분이 드린 지폐 한 장은 당신으로선 무척 큰 액수였다. 게다가 결코 선행 하나까지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셨던 분이었다. 그의 가르침을 눈으로 보면서 배울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소중한 복이었다.”

나눔이 아름다운 것은 가짐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소유의 끝은 아무리 포장되어도 그 소유 이전의 제자리로 돌아가기까지 미화될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아름다운 소유를 이뤘다 하더라도 나눔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다면 여전히 부끄러운 소유일 뿐이지요. 아름다운 소유는 물론이거니와 나눔에는 더욱 이르지 못한 우리들을 봅니다. 이제 제 아들의 손을 잡고 거리에 나섭니다. 아들에게 무척 검소하면서도 나눔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아버지로 비쳐지고 싶습니다.

사진=김기정 기자
글=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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