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군인 전쟁미망인과 교회 개척, 군사정권에 맞서 3선 개헌 저지 나서다 고난 겪기도

<목회 40년의 비사, 잊지 못할 사람들 신의와 배신>(생명의 말씀사)
한명수 목사에 대한 평가는 대개 두 부류로 갈린다. 엄지를 치켜 세우거나 아니면 그 엄지를 아래로 끌어내리거나 극단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래서 그의 신간 <목회 40년의 비사, 잊지 못할 사람들 신의와 배신>은 주목을 끈다. 한 목사는 이 책에서 상이군인과 전쟁미망인들과 더불어 창훈대교회를 설립하게 된 까닭을 설명하고,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기 위하여 어떻게 차별화해 나갔는지, 목회 40년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어떤 준비와 결심을 해나갔는지 회고하고 있다.

“…상이군경들이 의수와 의족으로 재생의 의지를 불태우며 전쟁의 상혼을 가슴에 안은 미망인과 자식을 나라에 바친 핏기 잃은 노인들을 바라보면서 바로 이곳에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것만 같았다. 이곳 창훈대 뜰은 수원의 우범지대이었으며 ‘녹두밭 웃머리’라 하여 삶에 실패한 사람들이 빈민촌을 형성하여 살고 있었는데 내가 여기에서 교회개척을 시작하는 경우 저들과 함께 평생을 지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결심이 힘들었다. 그래도 이 같은 곳에서 보람을 찾고자 수원에 짐을 내려놓고 초심을 변치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며 주님의 도움을 빌면서 개척의 길이 시작된 눈물 나는 곳이기도 하다.”(책에서)

군사정권 시대를 살면서 역사 앞에 민감하고자 한 노력도 언급한다.
“당시 나는 삼선 개헌 반대 투쟁 대열에 가담하여 수 없는 모임에도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삼선개헌 반대 투쟁 장소인 효창공원을 위시하여 파고다공원과 장춘단공원등의 여러 집회에도 참석하며 그때 숨이 차도록 분하여 이 독재정권만은 기어이 막아서야겠다고 쫓아다니던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광고란에 본 교단 중진 목회자들을 위시하여 본인의 이름이 게재된 것을 보고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는지 그때의 분함을 여기 필설로 다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자신이 속해 있던 한남 노회의 노회장을 상대로 소원장을 게재하고, 해명하는 신문광고까지 게재하였다. 특히 북한에서 태어나 월남한 실향민으로서 그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한기총 초대총무로서 그는 1990년에 이미 쌀 2만 석을 북한에 보내었고, 대북지원사업들을 꾸준히 진행하였다.
교단의 총회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교단의 정치 한복판에 서 있기도 했다. 그는 교단을 향하여 때로는 다른 소리로, 때로는 옹호자로서 일하였다.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에 대한 회고는 당신의 경직된 한국교회 실상을 얘기하는 듯하다. 한 목사가 소속한 교단은 1973년에 열린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에 교단 소속 교회들이 참석하지 않도록 하달하였다. 이유는 세계교회협의회 관계자가 일부 참여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성명서를 내어 그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책에는 그때 발표한 성명서를 그대로 싣고 있다.

“…우리는 진정 기도하는 중에서 교인들에게 이 대회참석을 엄금시켜야만 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하려니 이번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운동은 이미 이 땅에 해일처럼 큰 물결을 이루고 있으며 따라서 전체교인 모두가 이 대회를 사모하고 기다리고 있음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책에서)

그의 회고록을 읽는 재미는 또 있다. 특유의 소탈함이 묻어나는 이야기들과 자기 표현 등에서도 한 목사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정년을 앞두고 미리 후임자를 선정하여 승계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여전히 그에게도 ‘다른 마음’이 교차한 모양이었는지 “교회를 개척설립하고 40년의 긴 날들을 정들여 온 창훈대교회를 정년이 되어 물러가려니 (얼마나 아쉬운지) 이럴 줄 알았으면 총회에서 정년 제안이 제정될 때 반대했을 걸 하는 후회마저 가볍게 들 만큼 나에게 은퇴는 충격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부록에서는 목회자와 사모, 장로, 신학생 등에게 보내는 ‘속달편지’에서 그의 경륜이 묻어나는 당부의 말들을 전하고 있다. 한편 한 목사는 은퇴 후 세계밀알선교회 이사장과, 6?15 남북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경기본부 상임대표, 자주적 통일 조국독립을 위한 백범 정신실천 겨레연합 이사장 등으로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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