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드는 힘은 의식일까? 땀일까? 둘 다라고 대답하면 쉽지만 사람이란 게 어디 그런가요? 하나를 가지면 다른 하나를 못 가진 게 범부들의 모습인 걸요. 기독교에 관련된 도서를 출판하는 출판사 사람들과 만나면 가끔 의아했습니다. ‘저 정도’ 사람이 편집장이라고? 누군가를 두고 ‘저 정도’라고 생각하는 순간 스스로 얼마나 오만해지는지 알면서도 이런 오만한 판단을 하고 있는 저는, 아무래도 속물인 게 맞을 겁니다.
대개 ‘저 정도 사람’이라고 했을 때 제겐 의식을 땀보다 먼저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책이란 모름지기 정신의 산물이므로, 고고한 의식을 지닌 사람이 그 일에 종사해야 마땅하다, 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 출판사의 ‘그’는 그야말로 ‘저 정도의 사람’으로 제게 비쳤습니다. 이 때문에 출판사 이름을 보지 않고 단지 그가 편집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출판사의 책을 눈 아래로 두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요즘, 이런 저의 오만한 ‘사람 보기’ 태도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저 정도’의 그가 내놓는 책들이 쉬우면서도 독자들을 감동시키네, 하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필자를 발굴하고 그의 원고를 받아 다듬고, 책으로 만들어 내기까지 그가 쏟아내는 땀의 무게가 비로소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고상하여 탐나는 의식을 가진 분들, 그런 필자들과 늘 교제하며 책을 만드는 편집장들 가운데 더러 많은 분들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던 ‘땀’의 무게였습니다. 실제로 땀이 묻지 않은 ‘좋은 책’은 책 그 자체로는 가치 있을지 모르지만 책을 땀 흘리지 않고 내어버린 편집장은 비난 받을 일을 한 셈입니다. 독자들 손에 책이 갈 때까지는 보이지 않는 고상함보다 보이는 땀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가 내놓은 책들을 펼치며 생각합니다. 고상한 의식, 그것만으로 버틸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출판환경이 오히려 공정하다, 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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