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개를 키우신다. 크고 힘도 센 이 개는 워낙 힘이 세어 ‘개 집’ 알기를 우습게 알고 마구 흔들어댄다. 그래서 큰 돌을 하나 옮겨 개 집을 고정시키려고 하시다가 그만 발등을 찍고 말았다.
나는 그런 사실을 모른 체 서울 아들 집에 한번 다녀가시라고 했는데 거절하셨다. 중요한 일이니 꼭 오셔야 한다고 했는데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 이유를 말씀해 달라고 했더니 그제야 다리를 다쳤다는 것이다. 아니 그러면 진즉 이야기를 해 주셔야지 왜 아무 말도 안 하셨느냐고 했더니 너희들한테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부담을 주어서야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불효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을 데리고 부랴부랴 내려갔다. 상태가 무척 안 좋았다. 엄지발가락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발을 못 쓰니까 엉덩이로 방을 끌고 다니신 것이었다. 상처를 이리저리 만지면서 좀 어떠시냐고 여쭈었더니 어머니의 첫 마디.
“생각해 봐라. 너희 아버지가 안 다치고 내가 다친 것이 얼마나 감사하냐.”
저는 그저 어머니의 그 말씀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하긴 성질이 그렇고 그런 늬 애비가 다쳤어 봐라. 에미가 견뎌나겠냐? 그래도 내가 다쳐버린 게 낫지.”
어머니는 또 이렇게 덧붙이신다. “발등 안 찍히고 발가락 찍힌 것이 감사하다.”
그렇지, 발등이라도 찍었으면 어떻게 하나? 불행 가운데서도 다행한 것을 찾아 위로를 삼으려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한두 마디 인사치레로만 여긴 말씀이 계속 이어졌다.
“다치고 가만 생각하니 감사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더라. 생각해 봐라. 발가락 다섯이 다 다쳤으면 어떻게 되었겠냐? 꼭 세 개만 다친 것이 감사하지. 더구나 힘있는 오른발이 아닌 왼발 다친 것이 얼마나 감사하냐? 다쳐도 생활할 수 있도록만 다쳐 자식들 수발 들지 않게 한 것도 감사하고….”

어머니는 이번 일로 놀라운 신앙체험을 했다고 한다. 고통이 얼마나 심하던지 끙끙 앓기라도 하고 울고도 싶은데 잠든 아버지 잠 깨울까 봐 속 울음을 울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다섯 손가락이 어머니의 발가락을 붙잡더라는 것이다. 마치 “딸아 네 고통 안단다” 그러면서 꼭 싸매어 주는 듯한데 그렇게 따뜻하고 편안할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진통제를 먹고도 이겨내기 힘들던 그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이상했다. 상상할 수 없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통증이 가셨다. 이렇게 놀라운 방법으로 치유의 손길을 체험하게 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 표정이 환하게 빛났다. 어머니의 감사는 끝이 없었다.
그때 마침 둘째 아이가 “할머니 상 타셨네요” 해서 봤더니 ‘성경읽기상’이라고 새긴 거울이 걸려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손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래 말이다. 성경을 더 많이 읽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성경을 제대로 못 읽었는데 다치고 나니 모자라던 기도생활과 성경 읽기까지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아버지 핀잔을 하셨다.
“너희 엄마가 살이 쪄서 동작이 둔하니까 사고를 내지. 한 5센티만 발을 얼른 움직였어도 저런 일 안 당할 건데…, 돌이 떨어지면 얼른 발을 빼야지. 괜히 다쳐가지고선 바쁜 아이들 오게 만들고 그러네….”
그랬더니 어머니 왈, “이래서 우리 귀여운 손주들도 보고 얼마나 감사해요? 안 그러냐? 옛날 같았으면 느그 애비가 날 놀린다고 또 마음 상할 건데 저래도 내 마음이 끄떡없으니 얼마나 감사하냐?”
어머니는 마치 ‘감사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감사는 또 있었다. 더운 여름날 다치지 않고 겨울날 다쳐 감사, 병원신세 지지 않아 감사, 차도가 있어 감사….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말씀하실 때마다 쓰신 단어들이 흥미롭다.
“생각해 봐라. 얼마나 감사한지.”

뜻밖에도 감사는 ‘생각’에서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감사하다’는 말은 ‘생각하다’와 같은 어원에서 온 말 아니던가. 서구인들의 유명한 경구에 ‘Think and Thank’가 있다. “생각하라 그리고 감사하라.” 그래서 서양철학은 생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지 모른다.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처럼.


송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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