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처럼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 앞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살겠다’ 큰 소리 쳐도 시간이 지나 약속이 희미해지는 것 같으면 자기 편한 쪽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만수(61) 전 SK감독(KBO육성부위원장·사단법인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은 그런 점에서 한 사람의 야구인으로서나 신앙인으로서나 ‘약속을 지키며 사는 사람’으로 박수를 받는다. 야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야구로 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SK 와이번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국내에서는 유소년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재능기부로 훈련 지도와 아마추어 엘리트 야구팀 피칭머신 기증, 장학금 수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하여 소외된 라오스 청소년들에게 비전을 주고 있는데, 라오스 최초의
부산 물만골은 연산동에서 황령산과 금련산으로 오르는 깊은 계곡으로, 고도는 100~200m에 달한다. 민가가 거의 없던 그곳에 1970년대 후반부터 사람들이 조금씩 들어와 가건물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부산의 오지 마을인 ‘물만골 마을’이 생겼다. 영화 ‘1번가의 기적’이 촬영된 경사가 심한 그곳, 다닥다닥 가건물 집들이 붙어있고, 집만큼 절집도 많다. 고부랑 고부랑 골목을 올라가니 물만골교회(문상식 목사)와, 노숙인들이 이제는 가족으로 모여 사는 가족공동체 생활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2006년도부터 집이 없던 사람들이 문상식 목사를 중심으로 가족을 이루어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노숙인을 만나다 어릴 적 배를 타시던 아버지와 몸이 아파 중1때 돌아가신 어머
조용한 호스피스병원의 한 병실. 말기암 등 현대의학으로 회복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환자와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정리되어가는 삶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공기가 흐르고 있다. 그런데 그 무게를 존중하는 듯, 위로하는 듯 낮고 묵직한 소리로 음악이 연주된다. 클래식 음악이, 찬양이, 길이 2m, 무게 20Kg에 가까운 현악기 더블베이스를 통해 연주된다. 가슴을 타고 흐르는 음악은 이내 환자의 미간을 풀어지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며, 그동안 애써 살아온 삶에 대한 인정과 앞으로 가게 될 길에 대한 확신을 준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더블베이스 안동혁 수석(온누리교회 장로·사진)이 샘물호스피스병원을 방문하여 환자들을 위해 연주하는 모습이다. 틈이 날 때마다 병원을 방문하는 그는 혼자 가기도 하고
지난 3월 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려진 는 1시간 40분 동안 무대 위와 무대 아래가 혼연일체를 이뤘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시합창단(단장 강기성)이 기획하여 무대에 올린 이 공연은, 아주 오랜만에 한국민을 감격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특히 주인공 유관순 역을 맡은 소프라노 서선영 씨(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의 열연에 관객들은 더 더욱이나 열광했다. 당시 기독교 인구 1.3%의 상황에서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민족대표 33인 중에 절반이 기독교인이었고, 이 모든 운동의 장소와 중심이 교회와 기독교인들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공공의 장소에서 객관적으로 그리고 공연이 웅변하고 있음에, 소름끼칠 정도로 마음의 옷깃이 여미어지는 기분이었다. 3
현해인=현해탄(玄海灘)을 사이에 둔 한국인/일본인을 모두 품은 사람 한일관계에 진정한 봄을 만나기는 영원히 어려울까. 3·1 독립운동 100년, 경술국치 109주년…. 임진왜란부터 영토와 역사왜곡의 갈등이 있는 지금까지, 가까운 일본은 우리를 ‘호시탐탐’ 괴롭히고 아프게 해서, 가해자와 피해자처럼 늘 마음으로 얄미운 존재다. 2019년 지금도 군사적 외교적으로 긴장 상태이니 말이다. 이런 상황이 될 때마다 일본 땅에 사는 한국인들의 노심초사가 얼마이겠는가. 이런 길고도 지난한 한일관계의 협곡 속에서, ‘현해인’으로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유화준 목사(사진)와의 조우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지난 연말, 일본여행길에서 만나 나눈 대화는 일본인에 대한 선입관과 정서적 감정(?)에 대해 어느 정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용서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중요한 의무입니다. 저는 전작 ‘뷰티풀 차일드’를 제작하며 피해자인 캐나다 원주민들에게 가해자인 백인을 용서하라고 권면했고, 그것은 선한 동기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3자의 입장과 당사자 입장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에게 3번에 걸쳐 일본 방문을 하게 하시고 ‘일본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제게 매우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아는 데 행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고난 가운데 밀어 넣고 못 박고 창으로 찌르는 가해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학대받은 캐나다 원주민들의 상처와 용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를 만들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성수 영화감독(사진)이 이번에는 영화
“자기 존재에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다. 거기서부터 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노인도 그렇고 청년이나 아이들도 그렇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 - 정혜신의 중에서 지난 4월부터 매주 화요일 어스름 저녁이 되면 노숙인 자활쉼터인 구세군서대문사랑방(원장 김도진) 한 강의실에 노숙인들이 모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뒤 부지런히 저녁을 먹고 앉아 있으면 몸이 노곤해 잠이 올 수도 있는데, 피
아름다운동행 감사학교 교장으로 최근 위촉된 이의용 교수(국민대학교 교양대학·사진)는 의 저자이자 2000년도부터 대학에서 감사일기 쓰기 캠페인을 벌여오면서 감사일기 쓰기를 교회, 군대, 학교, 기업 등으로 확산해왔다. 수업의 일환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감사일기를 쓰게 했는데 그 효과는 놀라웠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받아들였던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삶의 변화를 증언했으며, “인성교육 차원에서 이것만큼 좋은 배움의 방법은 없다”는 평가를 받은 것. “좋은 효과 때문에 지금까지도 계속 감사일기를 쓰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가르칠 때는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감사학교장을 맡으면서 성경이 말하는 진짜 감사란 무엇인가를 강사진들과 함께 연구했고, 구조화시켜
‘하나님,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저를 의과대학에 합격시켜 주시면 주님 말씀을 따라 의료선교사가 되겠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대학 지원을 앞두고 철야기도를 하던 중 하나님께서 자신이 의료선교하기를 바라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서원기도를 하게 된 것. 경희대학교 의과대를 졸업하고, 경희의료원에서 내과 전문의 과정을 마친 그는 한국누가회 간사대표를 맡아 일하기도 했으며, 대학 동문인 아내는 해부병리 전문의 과정을 마쳤다. 심재두 선교사(사진)와 유소연 선교사 부부는 1992년 전문인선교훈련원 훈련을 마치고 1993년 알바니아로 가 의료선교사로 활동하였다. 동유럽의 낯선 땅, 알바니아는 이슬람권으로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1945년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때 독재자 엔베르 호자는
저 멀리 인천항이 내려다보이는 인천 중구 관동의 한 사무실, 화요일 오후 2시가 되니 “안녕하세요~” 유쾌한 인사를 건네며 사람들이 들어온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얼굴에는 이미 함박웃음. 아이같이 웃는 모습을 보니 서로에게 기분 좋은 사람들인가 보다. 그런 만남인가 보다. 지난 2014년 11월 21일 창립된 중앙환희합창단(단장 이양헌․사진 가운데)의 정기연습 풍경. 50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남여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합창단이 처음 결성된 배경은 여느 실버합창단과는 좀 다르다. 현역에서 물러난 약사들과 퇴직 공무원 등이 단원으로 주축을 이룬 합창단이라서가 아니다. “단장님, 잘 지내셨어요?” 웃으며 안부를 전하는 단원들과 단원들에게 세심히 안부를 묻는 이양헌 단장 서로의 모습이 꼭 아주
경남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에는 특별한 약국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약국 안 작은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가만히 귀기울여보면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들이다. 와글와글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더니 입을 모아 영어를 읽으며 연습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신반 시외버스정류소 옆 부림약국.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약국이지만 저녁이 되면 아이들의 공부방이 시작되는 특별한 장소다. 수업료도, 교재비도 없는 무료 영어 공부방, ‘오뚝이 영어공부방’. 부모들이 억지로 보내는 학원이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서 달려오는 공부방이다. 영어를 가르치게 된 이유 이 영어공부방을 만든 사람은 김형국 약사(64·마산섬김의교회)이다. 시골 아이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장소와 시
교회는 우리나라의 현 제도 교육을 정착시키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모체이다. 개화와 함께 서양선교사들의 영향으로 한국 기독교가 현대적 사회발전을 주도하다시피 했던 것처럼, 교회교육 역시 우리나라 교육 제도와 현장을 오랫동안 선도해 왔다. 교회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가장 오래된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교육 현장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을 공동집필한 백석대학교 교육학 교수들을 만났다. * ‘공감교수법’이라는 표현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 책을 집필하신 마음이 궁금해집니다. 김종표 교수 :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교회교육 리더들 가슴에 불쏘시개로 던져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제도권 교육의 모델이 된 교회교
남대문은 조선시대부터 일제, 해방이후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중심무대였기에, 그 옆에 전국에서 가장 큰 남대문시장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남대문시장에서 35년 동안 아동복 사업을 하는 최정숙 씨(72·벧엘기업). 매주 목요일이면 남대문시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 전날부터 바리바리 간식을 싸고 미리 복음팔찌, 복음수세미 등을 준비해놓는다. 사비로 준비하는 간식만 매주 4천여 개. 그냥 나가는 법은 없다. 아침 9시면 어김없이 20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2시간 동안 상가 곳곳을 두 사람씩 짝지어 전도를 한다. 뜨거운 더위에도, 추위에도 한주도 빠지지 않고 복음을 전한 세월이 벌써 19년. 헤드 마이크를 차고 나서는 그의 모습에 모두 반가워 인사를 한다. “어
“엄마, 아빠 언제 와요? 왜 안 와요?” 아이가 묻는다. 말이 입술 끝에 머무르고,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네 아빠가 지금 있는 곳은 교도소고, 아직 오려면 한참 남았는데…. 아이가 부끄러워 할까봐, 상처 받을까봐 비밀로 감춘다. 그게 맞는 거라 생각해서 외국에 일하러 가서 바쁘다는 속없는 얘기만 또 반복한다. 늦은 밤, 아이는 생각한다. ‘왜 아빠는 나를 보러 오지 않아? 왜 전화 한통도 없어? 아빠는 더 이상 내가 보고 싶지도 않은 건가?’ 수감자 자녀를 돕게 된 이유 “나이가 어린 수감자 자녀일수록 부모 수감 사실을 비밀로 하는 가정이 많고, 청소년의 경우에는 부모 수감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감자 자녀, 우리나라 전체 아동 가운데 약 5만 명이나 되는 그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박 선생(그는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취재를 허락했다. 여기서는 편의상 ‘박 선생’으로 호칭한다)을 만나게 된 건 김정삼 변호사(법무법인 치악)의 소개였다. (아름다운동행)를 펴낸 김 변호사는 판사 생활을 은퇴한 뒤로는 ‘유언 쓰기 운동’ 전도사로도 활동 중이다. 김 변호사가 박 선생을 소개한 까닭은 그의 한결같은 주장, 곧 “어떤 유언을 남기는가 하는 문제는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박 선생이 직접 삶 속에서 실천해 온 증인이기 때문이었다. 올해 76세인 박 선생은 1990년, 그러니까 58세 때 처음 유서를 썼다. 체신부 산하 전화국에서 32년 동안 근무, 중견간부로 일하던 박 선생이 1999년 정년 4년을 앞두고
연인인가 보다. 젊은 두 남녀가 서로 반지 낀 손을 들여다보며 좋아하는데, 100일이란 단어가 들리는 것 보니 100일 기념 커플 반지를 맞춘 것 같다. 누군가에게 그들이 예뻐 보였다는 말을 전하니 한마디 한다. “커플반지 낄 만 해요. 요즘 100일 넘게 사귀면 오래 사귀는 거래요.” 그래,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100일을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서로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해 50년을 산다는 것은 더 더욱 쉬운 일도, 평범한 일도 아닐 터. 평생을 성서신학자와 성경번역자로 살아온 민영진 박사(78·대한성서공회 전 총무)와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김명현 이사(74·전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장) 부부가 결혼 50주년을 맞아 풀어놓은 이야기에는 그 시간을 지켜낼 수 있었던 대단한 비결보
모자이크센터는 다문화가정의 아동과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을 돕기 위해 2009년 경기도 하남시에 설립된 다문화가정 지역아동센터이다. 베트남, 중국, 필리핀, 이집트, 라오스 등 여러 출신 부모를 두고 있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방과 후에 학습을 하거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목회자이면서 센터를 지금까지 이끌고 온 문병용 대표는 “그냥 이웃이라고 여기면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라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 하지요. 저는 ‘다름답다’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다른 것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불법 이주노동자들의 자녀들을 돌봐야겠다고 시작했다고. 그러나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신분문제로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먼저 만나기 시작했어요 그랬더
영화 (이하 신과 함께)을 관람한 1400만 명의 관객들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판타지에도 환호했지만, 죽음을 맞게 된 주인공 자홍(차태현 분) 형제가 결국 마지막에 깨닫게 된 ‘어머니의 사랑’을 함께 맞닥뜨리며 눈물을 훔쳤다. 말을 못 하는, 그러나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어머니 역할을 연기한 배우 예수정씨. 드라마 에서는 주인공에게 힘을 실어주는 보육원 원장 선생님으로, 영화 에서는 타인을 위해 희생했던 할머니 등으로 분하며 요즘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누비고 있다. “사람들에게 제 이름을 이렇게 소개해요. 예수님 할 때 ‘예수’, 그리고 ‘정’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식사하시러 가는 한식당 이름 같다고 웃으며 농담들 하시지요.” 강남의 한 카페에서 늦은 저녁 인터뷰를
‘땅끝을 가다’란 코너를 통해 아름다운동행 독자들에게 눈물겨운 오지선교 현장 이야기로 감동을 전해주고 있는 박태수 선교사(사진)가 4월 하순에 잠깐 한국을 방문, 귀한 만남을 가졌다. 박태수 선교사는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CCC 국제선교본부에 소속되어 지난 20여 년 동안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현지인 사역자와 교회가 영적 재정적 자립을 하도록 도우며 현지인 중심의 교회개척이 일어나도록 훈련하는 사역을 해오고 있다. 그렇기에 본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계 도처의 미전도 종족을 만나기 위해 직접 산 넘고 바다 건너 찾아가고 있다. “현지에 들어가면 전기가 없는 곳이 많아요. 날이 어두워지면 현지인 사역자들은 자기 거처로 돌아가면 깜깜한 밤, 숙소에 홀로 남게 되지요. 칠흑같은 어둠 속에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를 흔든 미투 운동의 원조는 일본군 성노예제로 고통당하셨던 김학순 할머니의 커밍아웃입니다.…차별구조에 저항했던 여성들의 역사 속에서 미투 운동은 맥락을 이어가야 합니다.” 윤영애 전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이하 교여연) 총무(사진 위)로부터 김학순 할머니의 스토리를 듣고자 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할머니를 역사의 증언대로 초청한 분으로 기생관광 폐지, 부천경찰서 권인숙 씨 성고문 사건, 미군에 의한 윤금이 씨 살해사건 등 그야말로 우리 현대사에 얼룩진 여성들의 참혹한 핍박에 대해 누구보다 더 가까운 현장에서 그들의 편이 되어 일한 증인이기도 하다. Q. 처음 일본군 ‘위안부’ 사건을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