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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반의 성희 씨를 처음 보았을 때 당연히 보통 가정의 ‘~의 아내’로 여겼다. 상냥하고 예쁜 성희 씨. 그녀와 가까워지며 싱글맘인 것을 알게 되자 곧바로 궁금함이 올라왔다. 단순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여성으로서 느껴지는 연민이었고, 무엇인가 돕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가부장적인 사회의 끝자락에 있는 한국 가정에서 ‘벽’같이 느껴지는 상황을 박차고 나온 만용이었을지, 아님 정말 견딜 수 없는 ‘악’으로부터 빠져나온 것일지. 싱글 맘을 대하는 데에 이만큼 여지가 생기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 속 여러 경우를 보았기 때문이다. 목숨보다 더 중했던 삶의 틀(?) 오래전 성희 씨 나이였던 언니가 아프다는 사실을 들은 지, 1년 만에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때까지 70대의 건강한 부모 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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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5.02.0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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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영국인데 비가 안 오네.” 청명하고 상쾌한 8월이 지나자 으스스한 서늘함이 회색빛 하늘과 함께 밀려왔다. 온돌에 익숙한 우리에게 방 한쪽 라디에이터의 온기는(그것도 잠들 때와 깰 때 1시간만 작동하는) 별 위안이 되지 못했다. 유학 생활 첫 학기에 아빠는 영어공부에 정신없고, 네 살 개구쟁이와 돌도 안 된 아기와 함께 길 모르고 말 안 통하는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었겠나. 게다가 비는 아무 때나 후드득 내리고 손바닥만 한 파란 하늘이 구름 사이로 지나고 나면 휑한 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는 전형적인 영국 날씨가 되었는데 말이다. 10월, 서머타임이 끝나고 시간이 당겨지니 오후 네 시만 되면 연한 잉크 빛이 돌며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달라지지? 영국 런던의 위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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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4.12.07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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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가을, 기다리던 강좌 모임에 가서 진한 메시지와 함께 뜻있는 시간을 보냈다. 예상치 못한 옛 선생님과 대학 동창과의 만남, 얘기하다보니 알게 된 딸 친구의 부모 그 밖의 등등으로 마음이 들떴다. 강사의 지성적이고 영적인 깨우침이 소화할 틈도 없이 다가와 벅찬 과제로 안고 있는데, 우연한 자리서 오랜 세월 열심히 살아온 옛 사람들까지 만나니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고단한 날을 지내고 다음 날 아침, 여전히 들뜬 마음으로 누군가와 긴 통화라도 하며 정리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얘기할 상대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아, 엄마, 아버지가 안 계시네.’ 노년의 부모님과의 대화 노년의 부모님은 나들이 하는 일이 줄어들며 곧잘 전화를 기다리셨다. 잘 못 들으면서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대화하려는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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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4.11.0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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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아 씨는 아들이 언제 예수님을 마음으로 깊이 만났는지 잘 모른다. 대학에 다니며 신앙생활의 모습이 좀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신학대학원을 가겠다고 할 때는 정말 놀랐었다. “그래,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니?” “이건 잘 생각해보고 결정할 일이야”라며 한 해를 붙잡아 두었었다. 노래방 복음성가 그즈음 모처럼 가족이 모여 오랜만에 노래방에 가게 되었다. 아빠는 옛 생각이 나는지 70, 80 시대의 ‘긴 머리 소녀’ ‘사랑이야’를 구성지게 부르고 민아 씨도 화음을 넣으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그런데 모니터 자막에 ‘성령이 오셨네’가 뜨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뭐야, 이런 찬송도 나와?” 반주에 맞춘 아들의 노래는 알고 있는 찬송가가 아닌 복음성가 ‘성령이 오셨네’였다. 후렴이 다이나믹한 그 찬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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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4.10.0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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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은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20대 후반이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온 현영이 믿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주위에서는 당연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현영이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는 신앙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함께 스포츠를 하며 여가를 즐기다 햇수가 지나니 이젠 고민이 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부모님은 딸에게 우선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하시며 만일 안 믿는 가정에 들어갈 경우, 한 번도 본 일 없는 명절 분위기와 제사 등을 각오해야 한다고 하셨다. 잘 모르는 앞날과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제사문화를 미리 염두에 둘 마음은 아직 없는 현영이지만 객관적인 질문이 일었다. 교회 청년부엔 남성이 적은데요 교회의 어떤 모임이든지 남녀 비율을 보면 여성이 훨씬 많고 청년부서도 마찬가지인데 믿는 사람들끼리의 결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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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4.08.3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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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해서 분가한 것이 아니다. 단지 지리적으로 함께 할 수 없어서 싱글로 각자 살림을 꾸려가는 아이들 이야기다. 학교를 다닐 때는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학교와 친구의 울타리가 있었지만 졸업을 하니 모든 게 달라졌다. 각자 일을 찾아 흩어지고 그곳에 남은 인경 씨 딸은 직장인이 되어 독립된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월세도 줄이고 말동무도 할 생각으로 룸메이트를 구해 집을 얻었는데, 그것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출, 퇴근 시간을 비롯해 생활양식이 다른 룸메이트와 한참을 부대끼더니 결국은 원룸에서 혼자 살아야겠다고 했다. 인경 씨는 “그러렴” 하고 허락했다. 이사하니 소파가 있어야 된다고 하고 청소기도 샀다는 얘길 들으면서 인경 씨는 ‘알아서 잘하는 애’라고 생각했다. 아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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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4.08.0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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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해가는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만큼 뿌듯하고 벅찬 일이 또 있을까. 어려서는 모든 것을 가르치고 돌보다가 성장한 다음에는 뒤에서 바라만 보는 것도 엄마의 역할이다. 부모보다 더 훌륭해지라는 마음으로 힘을 다해 뒷바라지한 공부…. 딸의 진로 선언 순영 씨는 그렇게 키운 딸이 진로 선택을 앞두고 하는 말에 혼란이 왔다. 내 이십 대보다 더 예쁘고 많이 배운 애가 큰 결핍 없이 커 와서인지 순수한, 그것도 너무 순진한 말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엄마, 나는 아무래도 보람 있는 일을 찾아야겠어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잘 안 보이는 데서 봉사하는 그런 일이요.” “좋은 기업에 들어가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지.” “예를 들면 아프리카나 북한 관련 일을 하고 싶어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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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4.07.0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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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가져간 공산군 “충청도에서 일가를 이루고 살던 우리는 피난 갈 생각도 할 틈 없이 공산군이 쳐들어왔어요. 얼굴은 어린데 거렁뱅이 같은 공산군들이 밥을 내 놓으라 해서 어른들이 차려주면 정신없이 먹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가 우릴 쳐다보고 같이 먹자고 하면 도망가서 숨어 지켜보곤 했지요.” 올해 75세가 되신 강 할머니의 전쟁 기억이다. “그런데 얼마가 지나자 후퇴하면서 이번엔 있는 걸 다 내놓으라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보다시피 남은 게 뭐가 있느냐’며 호통을 치셨지요.” “그러자 대장으로 보이는 군인이 어린애를 붙잡아 와서는 데려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말없이 일어나시더니 소를 끌어 오셨지요. ‘가져가슈.’ ‘우린 소 없으면 안 되는데…’ 조그만 소리로 말하면서도 아무도 나서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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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4.06.0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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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수안군 천곡면 대정리 두대동 엄마는 두지터라는 별명을 가진 두메산골 마을에서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딸들 이름에 보배 ‘보’자를 쓰고 있었는데 엄마 이름에는 도울 ‘보’가 들어가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여기며 평생 남편 돕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살아왔다. 신앙따라 숭의여학교로 고향 황해도 수안은 금광이 있는 산골 농촌마을로 기독교가 일찍 전파되어 여름마다 평양 신학교 전도사들이 성경학교를 열어오는 곳이었다. 엄마는 그분들의 도움으로 평양 유학을 위해 15살에 기차에 오른다. 숭의여학교 생활은 천국같이 아름답고 질서가 있었다고 했다. 푸른 잔디위의 선교사 집들과 넓은 빨래터에서 후배들이 선배의 것까지 빨아주던 광경, 기숙사 사감의 엄위하고 자상한 돌봄 얘기는 당시를 상상하게 만든다. 엄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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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4.02.2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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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은 결혼할 무렵이 되어서야 아버지의 깊은 우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서류를 떼어 보다가 아버지가 이북에서 결혼한 경력이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자식도, 그러니까 배다른 형제도 둘이나 있다는 사실. 이런 큰일을 30년 동안을 모르고 살아온 것도 놀라웠지만 아버지의 인내와 엄마의 속 깊음도 다시 보였다. 아버지는 공부를 좋아하고 명석한 분이었지만 곧잘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 우울한 모습을 보이곤 하셨다. 살면서 가졌던 몇 가지 의문이 연결되었다. 어려서부터 친척 왕래가 별로 없었던 우리 집, 명절이면 아버지가 아침 일찍 혼자 나가시던 생각이 났다. 그럴 때 엄마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시던 모습 -아마도 아버지는 명절에 휴전선 근처 망향의 집이라도 가셨나보다. 선영 씨는 아버지 공부방에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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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4.02.0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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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 속에 갇혀 있어요.”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듯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예상대로 학기를 마치고 보스턴에서 시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미국 북동부 지역을 지나며 눈 속에서 하룻밤 머물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주영 씨는 이지적이고 예의바른 중년 여성으로 공부 기간이 길어지는 남편 옆에서 자신의 공부를 계속 해오고 있었다. ‘사람 좋은’ 남편의 학위 과정이 이런저런 일로 오래 지속되는 중에도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일과 역할을 찾아서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남 챙기다 공부 늦어지는 남편 옆에서 서구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에게 “주말이나 저녁 시간 이후까지 도서실에 있는 너희를 보면 가족의 화평이 염려스럽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에 반해 주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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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4.01.1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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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야! 대학교를 졸업하며 커뮤니케이션 전공을 따라 기자를 해야 하나 했는데, 신학대학원을 가겠다고 해서 “좀 더 생각해보라”고 붙잡았던 때가 기억난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앉아서 숙제하는 것보다 함께 어울려 사는 얘기 나누길 좋아하는 네가 많은 과목의 신학대학원 과정을 마쳐 가는 게 감사할 뿐이다.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지? 학생 사역에 열심을 내는 모습을 보며 격려해 주어야 하는데 엄마는 기쁘면서도 공부에 지장이 가는 것 같아 늘 걱정의 말을 많이 했지. 이번에도 히브리어, 헬라어 시험과 과제물 마칠 때까지 마음 졸이며 연락도 못하다 “다 했다”는 네 전화받고 기분이 ‘up’됐지. “주님이 시작하신 일이니, 끝까지 잘 이끄실텐데… 올해는 새로운 교회에서 아이들과 다시 사귀고 사역을 시작해야하니 마음이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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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4.01.0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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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을 잘하는 주희는 예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유학길에 올랐다. 영어공부와 예비학교를 거쳐 영국 왕립음악원을 마치고, 보스턴에 있는 음악학교에 들어가며, 주희는 성실함을 인정받았고 바이올린 연주만 잘하면 그게 효도였고 인생 성공으로 보였다. 그랬다. 형제 가운데 아들도, 맏이도 아닌 중간 딸이 고가의 악기를 구입해 5년 이상 유학생활을 하는 건 온 가족의 배려와 뒷받침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었기에 주희는 오로지 연주에 집중했다. 어렸을 때 소질을 보인 이후 20대 중반까지 악기 하나를 들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달려오며 조금만 더하면 된다고 매일의 연습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다녀가신 어머니가 아프다고 연락이 왔다. 집에 오라고. 학기 중인데…. 급하게 비행기 표를 마련해 도착했을 때,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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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3.12.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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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주현 씨는 시각 장애를 가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결혼한 지 몇 해가 되는데 아기가 없어 늘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면서, 시어머니 시중을 잘 들고 있어 자주 눈길이 가는 젊은이였다. 앞을 못 보는 시어머니의 궁금증을 미리 알아서, 누가 가까이 오면 슬쩍 귀엣말로 알려주고 필요할 듯 보이는 물건들을 척척 손에 대어주는 자세가 어찌나 적절한지, 수선스럽지 않고 야박하지 않은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는 중에 어려운 과정을 거쳐 귀한 아기가 생겼다. 쌍둥이였다. 몇 년 만에 잉태된 아기들로 인한 감격도 잠시, 입덧과 함께 배가 금세 부풀어 오르며 이런저런 증세로 힘겨운 나날을 이어갔다. 임산부는 ‘절대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 말에 부부는 고민에 빠졌다. “어쩌면 좋지?” “어머니께 그대로 말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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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3.12.01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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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애까지 대학에 들어가니 설아 씨는 한 짐을 내려놓은 마음이었다.“이번 생일엔 좀 좋은데 가서 식사합시다.”흔쾌히 응하는 남편과 함께 강물이 보이는 레스토랑을 찾아 모처럼 분위기를 누렸다.마침 해가 지며 어두워지는 가을 저녁, 좀 이른 시간인지 한가한 덕분에 애피타이저가 서비스로 제공됐다. 잉크를 풀어놓은 듯 저녁 색이 짙어지는 창가,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622번이 나오고 있었다.“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아?” 애들 얘기, 인생 얘기를 해가며 긴 저녁식사를 했다.“이제 일어나야지.”늦은 10월 밤, 시내를 벗어난 교외는 캄캄하고 차가왔다.“전화 오네.”“아버지가 입원이요?” 정신을 가다듬어 보지만 설아 씨의 가슴은 콩콩 뛰었다.그러니까 두 달 후면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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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3.11.0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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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 씨는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면서 인생의 노년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에 나오는 요양원 모습은 먹기 싫다고 뻗대기도 하고, 보행 보조기로 밀고 다니다 부딪치기도 하고, 그 속에서 은은한 사랑이 오고 가며 마지막 화음을 만드는 음악이 연주되기도 하는데 실제 요양원은 조용한 노화의 공간일 뿐인 것이다. 표정 없는 얼굴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노년의 단계, 그것도 거동이 불편해 오고 갈 수 없어 자리를 보존하고 있게 되는 기간이 얼마나 지나야 하는 걸까.‘생존’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노년이 아닐 수 없다. 그이 이름이 뭐였지지영 씨는 그곳을 계속 방문하면서 어머니와 한 방에 같이 계시는 정 할머니와 가까워졌다. 그분은 지영 씨 어머니에 비해 상태가 좋은데도 “지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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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3.10.0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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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결혼 소식이 줄을 잇는다. 올해 말까지 열 건, 그 가운데 두 가정이 상대방 부모님이 다른 나라에 사는 외국인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한 가정은 윈난 성 출신의 신랑, 다른 쪽은 네덜란드 신랑이다.굳이 조선 말, 대원군의 외국인에 대한 극 보수적인 성향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유독 다른 나라 사람에 대해 선을 그어 왔다. 그런 우리의 자녀들이 외국인 신랑 신부들을 데려 오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둔 사람이 있어요예원이는 모범생 외동딸로 컸다. 고등학교 때 호주로 유학을 가서 영어와 다른 문화 배우느라 힘든 중에도 늘 “괜찮다”며 부모에게 감사를 전했다. 대학도 졸업 후 실제로 할 일을 생각하며 호텔 경영학을 선택했다. 호텔을 잘 경영하려면 레스토랑이 중요하다며 밑에서부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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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3.09.1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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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은 요즘처럼 옥수수가 나오는 시즌이 되면 초등학교 때의 한 기억이 뿌연 흙먼지 속에 그려진다. 자동차가 지나가거나 바람이 불 때 시야를 덮던 흙먼지 속 이야기.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는 8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고, 그 중엔 고아원 애들도 꽤 있었다. 그 애들을 포함해 형편이 어려운 애들에게는 학교에서 매일 옥수수 빵을 나눠 주었다. 노란 알갱이가 보이는 옥수수 빵- 냄새도 좋고 먹음직한 옥수수 빵이 영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빵바구니 사올 사람, “저요!”새 학기가 되어 첫날, 선생님이 칠판에 몇 항목을 쓰셨다.빗자루 5개, 쓰레받기 5개, 총채 5개, 걸레 20개, 빵바구니, 화분 5개.사올 사람은 손을 드는 것이었다. 영실은 자신도 모르게 빵바구니에 손을 들었다.
작은 천국 패밀리
전영혜
2013.09.0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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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 씨는 잘 자란 20대의 딸을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벅차다. 열심히 뒷바라지한 열매이기도 하고, 그 이상이기도 한 딸이 흐뭇하고 고맙다. 엄마와 달리 감성이 풍부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 집중하는 걸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얼마 전부터 성경 말씀을 읽고 공부하더니 몇 개월 만에 생활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침 일찍 큐티로 시작해 삶에 대한 가치관이 확실해진 딸을 엄마가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그런데 한 가지 안 바뀐 게 있다. 엄마 순위는 몇 번째?그전에도 밖에서는 남들과 매너 좋은 사람으로 살면서 엄마한테 냉정하게 굴더니, 이젠 웬만한 일에 하소연 좀 할라치면 “기도해 보세요”, “엄마가 스스로 생각해 봐”라고 두 말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 이젠 기도하라는 말로 나를
작은 천국 패밀리
전영혜 객원기자
2013.08.18 13:42